우리는 여러 방식의 운동을 경험합니다. 무거운 짐과 함께 계단을 오르는 노인의 짐을 대신 들기도, 참사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옷과 가방에 노란리본을 달기도 합니다. 타국에서 곤경에 처한 생면부지의 사람들을 위해 구호물품을 보내기도, 조금 더 나은 세상을 상상하며 투표권을 행사하기도 합니다. 불의에 항거하여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서기도, 때로 멀리서나마 그것을 지지하기도 합니다. 운동의 방식은 우리 삶의 개수만큼 다양한 방식을 갖고 있습니다.
일상의실천은 세 명의 디자이너가 디자인이라는 도구로 삶의 방식을 찾아가기 위해 만든 작은 회사입니다. 매 해 두세 가지 자체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한국 사회 안에서 디자이너의 역할을 고민하는 소규모 공동체이기도 합니다.
‹운동의 방식›은 운동의 여러 방식 중 일상의실천이 선택한 방식을 선보이는 전시입니다. 날 선 정답이 아닌 다소 거칠고 울퉁불퉁한 미완의 전시로, 디자인과 운동이 갖는 낯선 간극을 잇고자 노력한 지난 흔적의 기록이기도 합니다.
‹운동의 방식›을 통해 많은 분들과 다양한 운동의 방식에 대해 함께 고민할 수 있길 바라봅니다.
전시기간
2017. 4. 10. 월요일 – 2017. 4. 28. 금요일
오전 10시 – 오후 8시
전시장소
탈영역우정국
서울 마포구 독막로20길 42
(창전동 390-11, 구: 창전동우체국)
전시오프닝
2017. 4. 12. 수요일 오후 7시
전시토크 1
일시: 2017. 4. 15. 토요일 오후 4시
장소: 탈영역우정국(2층)
주제: 일상의 실천은 무엇인가
참여: 일상의실천(권준호, 김경철, 김어진)
전시토크 2
일시: 2017. 4. 22. 토요일 오후 4시
장소: 탈영역우정국(2층)
주제: 디자이너의 다양성과 외연 확장
패널: 권준호(일상의실천), 박신우(페이퍼프레스), 박철희(햇빛 스튜디오), 장태훈(제로랩)
사회: 김어진(일상의실천)

Life: 탈북 여성의 삶
2011/2017
목조 구조, 레이저커팅, 기어
1700x700x2700mm
Royal College of Art 졸업 작품 재제작
글 편집: 허민재, 아킬라 크리스난(Akhila Krishnan)
복구 도움: 김도현, 김리원, 민동석, 방정인, 장태훈, 최인, 홍재민
공간 제공: 제로랩
<Life: 탈북 여성의 삶>은 탈북 여성의 증언을 기반으로 작성된 그들의 이야기를 풀어낸 설치 작업이다. 그들이 가족을 버리고 두만강을 건널 때, 낯선 남자의 손이 그들을 끌어낼 때, 어제까지 살아 있던 사람들을 자신의 손으로 땅에 묻어야 했을 때, 그 순간순간의 감정을 시각화하기 위해 그들의 증언을 ‘수용소’, ‘고문 기계’의 형상을 가진 목조 구조물을 통해 구현했다.
1.
나의 고향 함흥은, 봄이 되면 사과 향을 실바람에 실어 왔다. 동네 근처의 군수 공장에서 들려오는 소음과 매연이 사과 향기와 섞여, 오묘한 냄새를 만들었다. 달콤하고 기름진, 가볍고 무거운 이상한 냄새는 한꺼번에 내 폐에 달라붙었다. 겨우내 굶주렸던 나의 배는 그 향기를 깊게 들이마셨고, 그러고 나면, 옥수수 물이 찰랑대는 나의 위에서는 헛 구역질이 밀려왔다.
2.
나는 그 날의 일을 생각한다. 내 인생을 다시 새긴 그 날 밤의 일을. 두만강의 차가운 물은 나의 몸을 끈질기게 끌어당겼다. 가지 말라고. 가족을 버리지 말라고. 물속에서 나를 잡아채던 수많은 죽은, 앞으로 죽을 사람들의 축축한 손들을 뿌리치며 반대편 강기슭으로 나오는 순간, 나는 다시 태어났다. 그리고 나는 나의 배신에 상응하는 벌을 받았다. 남자들의 욕망 아래서 끝없이 농락 당하는 내 몸은, 항상 그날의 나의 죄를 기억하게 했다.
3.
뒤틀린 표정으로 나에게 소리를 지르던 사람들. 차가운 감옥에서, 제복을 입은 그들. 내 자궁을 날카롭게 헤집었던 차가운 손가락의 기억. 정신이 연약해지는 틈을 노려, 좌절감은 내 숨을 타고, 몸 구석구석 파고들었다. 시체 썩는 냄새마저 무뎌져 버린 그곳에서, 나는 애처롭게 마지막 정신을 붙잡고 있었다. 내 생명은 나의 의지가 아닌, 단순히 충실한 삶의 본능일 뿐이었다.
4.
그다음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드문드문, 피부가 하얗게 벗겨져 죽어있던, 커다란 들쥐들. 그 쥐에서 흘러나온 흥건한 피, 고향의 여름날 석류 같은 달콤한 붉은 색. 나의 토사물 속의 초록색의 풀 덩어리들. 나는 살아 있는 것일까? 죽은 것인가? 나는 살고 싶었다. 아니, 죽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나를 잡아끌던 차가운 그 강물이 생각났다. 나는 그 순간 살아 있는 것도 죽은 것도 아니었다. 그 물에서 나는 목숨을 건졌지만, 내 인간성을 잃었다. 나는 단지 존재할 뿐이다.

끝나지 않은, 강정
2014
사진
900x1275mm
현지 도움: 제이(제주 평화상단 활동가)
촬영 도움: 강정의 딸, 강정마을 부회장님, 공소회장님, 오철근 선생님, 김군
서체 도움: 이용제(글꼴 디자이너)
2007년 제주 강정마을에 건설이 결정된 제주해군기지(現 제주민군복합형관광미항)는 지역발전과 인접 국가 견제 등을 이유로 2011년 공사가 시작됐다. 제주해군기지는 지역 생태 환경에 악영향을 끼치면서도 공사를 강행했는데, 특히 건설 현장에 해당하는 강정 앞바다는 멸종 위기 2등급 종 ‘붉은발말똥게’의 서식지였다. 민군복합형관광미항이라는 명칭으로 진행됐던 제주해군기지는 실제 민간시설에 투입될 예산이 전체 예산(1조 300여 억 원) 중 10%도 되지 않는, 건설 승인 절차에서조차 의혹투성이였던 정부승인사업이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지역발전의 그늘 아래 해체돼 버린 강정마을의 주민들이었다. 승용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은 시골길을 사이에 두고 찬성과 반대가 나뉜 모습은, 마치 그 길이 넘을 수 없는 커다란 분단 선으로 보이게끔 만들었다. 망가지고 해체된 강정마을의 주민들은 공사현장 앞에서 마을을 지키지 못했다는 미안함으로 매일 아침 삼보일배와 미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끝나지 않은, 강정>은 강정마을을 지키며 살아가는 주민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이들의 모습을 통해, 이 사건이 비단 비행기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섬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전해주고 싶었다. 평생을 강정에 살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을을 지키는 투쟁가가 되어버린 사람, 어느 날 강정으로 달려가 마을주민으로 살면서 연대하는 사람, 차가운 바닷바람을 등진 채 매일 아침 미사를 드리는 사람. 이 모든 얼굴을 마주할 때 비로소 이들이 나와 상관없는 얼굴이 아니라는, 우리 모두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이야기가 <끝나지 않은, 강정>에는 담겨 있다.
제주해군기지가 건설되는 모습은 분명 우리 삶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갖가지 토목개발의 논리와 명백하게 닮아 있다. 1988년의 상계동과 2009년의 용산 그리고 채 알려지지 않은 현재의 모든 토목개발은 곧장 환경의 파괴와 공동체의 와해라는 완벽한 기시감으로 귀결된다. 매끈하게 들어서게 될 콘크리트의 이면은 이렇듯 황폐해진 일상의 잔해들로 이뤄져 있다.
제주해군기지는 결국 ‘제주민군복합형관광미항’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완공됐다. 수천 명의 외지인과 군인이 강정과 인근 지역으로 몰려들 것이고, 지역민보다 외지인이 북새통을 이루는 마을 공동체는 자본논리 안에서 철저한 이해관계로 변질될 것이다. 부디 강정의 얼굴들이 잊히지 않기를 바라며, 강정을 닮은 또 다른 ‘강정’의 끝나지 않은 투쟁을 기억해본다.

그런 배를 탔다는 이유로 죽어야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2014
철재 펜스와 리본
1200x2400mm
2014년, 차가운 사월의 바다로부터 304명의 목숨이 돌아오지 못했다. 그중 아홉은 여전히 생사의 여부조차 알 수 없으며, 3년이 지난 2017년 4월 지금에 이르러서도 당최 바닷속에서 나올 줄 모르는 저 육중하고 기괴한 쇳덩어리는 설명하기 힘든 침묵을 지키며 우리를 응시하고 있다.
어른들은 비정했다. 힘없이 스러진 인명을 목전에 두고도 지리멸렬한 변명과 거짓된 눈물, 말라버린 침묵으로 일관하며 숱한 좌절감을 외면했다. 모두 잊고 경제나 살리자는, 침묵보다 못한 정치깡패들의 더러운 발언은 권력의 추잡함의 극치를 넘어 역겹고 비렸다.
적나라하게 드러난 유착과 비리, 경찰과 언론 그리고 정부 — 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껍데기들 — 의 무능은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가 무너진 이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우리 사회의 민낯 그 자체였다. 과거에 멈춰버린 사회를 바라보며, 시간은 단지 살아남은 육체의 퇴화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마냥 느껴졌다.
이루 셀 수 없는 삶들이 수면 아래로 사라져 갈 때, 우리는 함께 절망하며 서로를 위로했다. 산 자들의 슬픔은 차라리 두려움에 가까웠고, 일상은 매일 대항해야 할 고통에 다름 아니었다. 받아들일 수 없는 죽음 앞에서, 우리는 그것이 결코 나의 죽음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 끝을 헤아릴 수 없는 분향소 앞 조문객의 행렬은 마치 산 자와 죽은 자를 잇는 커다란 애도의 끈과 같아 보였다.
<그런 배를 탔다는 이유로 죽어야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모든 삶의 존엄이 잊히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된 프로젝트이다. 허튼 죽음도, 가벼이 여겨질 목숨도, 돈으로 환산될 운명도 어디에 없음을 일상의실천은 이야기하고 싶었다.
모든 삶의 무게는 반드시 같다. 영문도 모른 채 스러져 간 인명은 외면해서는 안 될 또 다른 나의 모습이다. 숭고한 모든 삶이 서로 닿아있음을 바로 보며, 이 모든 비극을 끝까지 외면하지 않길 소원한다.
–
삼가 돌아가신 모든 희생자분들의 명복을 빌며, 아직 끝나지 않은 세월호 사건의 진상규명이 명백하게 이뤄지기를 촉구한다.

나랑 상관 없잖아
2013
종이에 연필, 목탄
788x1090mm
《2013 한국 타이포그라피학회 회원전》 출품작
<나랑 상관 없잖아>는 일상의실천에서 진행한 첫 번째 자체 작업이다. 우리는 이 포스터를 구상하며 소통과 단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고, 디자인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이어주는 일종의 다리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한편으로는 소통을 단절시키는 말과 생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는데, 광화문 광장으로 상징되는 ‘현장’과 바로 길 건너편의 한가롭고 평화로운 카페 풍경의 거리감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에 대해 생각했다. 일상과 사회적 갈등이 공존하는 그 거리에서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한 그들의 눈빛에서 읽을 수 있었던 감정은 아마도,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라는 냉소였을 것이다. ‘나랑 상관없잖아’, 이 짧은 문장은 그렇게 ‘너’와 ‘나’를 구분 짓고, ‘네 문제’와 ‘내 문제’의 경계를 선명하게 한다.

살려야 한다
2016
각목
4500x3000x1500mm
도움: 길동은
살려야 한다. 필히 ‘막중한’ 이 문장이 싸구려 정치 수사로 변질돼 아무렇게나 사용되는 모양새를 보니 그 모습이 어느 때보다도 우스꽝스럽게 다가왔다. 비단 ‘살려야 한다’라는 문장이 가리키는 본연의 의미를 주목했다면, 그녀와 그녀의 하수인들은 단연코 이 문장을 사용할 수 없었을 것이다. 바라지도 않았지만 말이다.
살려야 한다. 그것은 아직 죽지 않은 현재를 가리키고 있다. 죽지 않았으니, 다시 말해 살릴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살릴 수 있다는 것. 우리는 굴뚝과 철탑 위에서 당연한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노동자의 절박한 목소리를 살릴 수 있다. 도심 한가운데에서 외마디 비명과 함께 불타버린 용산의 망루 속 철거민들과 바다 한가운데에서 구조를 기다리며 발을 동동 구르던 진도 앞바다 세월호 속 희생자들의 잊혀가는 기억을 살릴 수도 있다. 그리고 — 이제는 완공된 — 제주민군복합형관광미항이 들어선 강정 앞바다의 사라져가는 연산호와 평창올림픽으로 인해 무차별적으로 쓰러져가는 가리왕산의 나무도 살릴 수 있다. 돌이킬 수 없다면, 우리 삶 도처에서 외면당하고 잊혀 갈 저들을 쏙 닮은 숱한 군상을 우리는 살릴 수 있다.
<살려야 한다>는 넓은 의미의 회복을 가리킨다. 멀리서 들려오는 타인의 외침을, 쉽게 잊혀지는 기억을, 망가져 가는 누군가의 일상을 외면하지 않을 때 비로소 다시 살릴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긴다. 마치 곧 쓰러질 듯 위태로운 망루의 형상을 닮은 <살려야 한다>는 오늘날 한국 사회의 면면과 어슷하게 닮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쓰러지지 않았기에 우리는 분명 다시 살릴 수 있다. 살려야 한다는 것은, 우주가 도와주지 않아도 충분히 가능하다.

서울살이: Life in Seoul
2016
사진 콜라주
1200x2100mm
작업 도움: 이규찬
서울은 대한민국 수도이자 요충지이다. 동시에 다양한 입장이 충돌하고 화해하는 딱 잘라 규정짓기 어려운 미묘한 도시이기도 하다. 이 도시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는 지엽적이면서도 시대적 인상을 갖춘다. 민주주의를 열망하던 투쟁의 한 복판이자 한 국가의 올림픽이 열린 화합의 장이기도, 수많은 철거민과 희생자를 불러일으킨 폭압의 현장이기도 하다. 거대한 백화점과 다리가 무너져 산업화 시대에 벌어진 대한민국 개발논리의 무차별성을 여과 없이 보여주기도, 수많은 축제와 맞먹을 만큼 다양한 이데올로기의 각축장이기도 하다. 서울은 다양성의 공존을 기저에 깔고 있으면서도 화해와 증오가 엎치락뒤치락 반복되는 기괴한 도시임이 분명하다.
2016년 AGI(국제그래픽연맹) “Open/Congress”가 서울에서 개최했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Special Project (포스터 전)”의 주제는 ‘I Love Seoul’로, 서울이라는 도시를 디자이너 각자의 시각으로 재해석하는 전시였다. 일상의실천은 이 도시를 맹목적인 사랑으로 바라보는 관점 대신, 사랑과 증오가 뒤엉킨 애증의 도시로 규정했다. 독재와 투쟁, 축제와 반목, 개발과 희생 그리고 촛불과 태극기가 건네는 온갖 군상을 적확하게 드러내는 것으로부터 서울을 바로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서울살이: Life in Seoul>은 1970년대부터 2017년 3월까지 서울의 다양한 군상을 담고 있다. 약 1,000여 장의 사진을 다양한 경로로 취합하여 시대별 인물과 풍경을 사진에서 분리하는 과정을 거친 후, 포스터 상단으로부터 연대순으로 인물들을 각기 나열했다. ‘I Love Seoul’이라는 글자 사이로 부자연스럽게 얽혀있는 서울의 불완전한 면면은, 여전히 녹록지 않은 지금 우리의 서울살이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 불완전한 동질감이 이 도시를 이해하는 얼마간의 단서가 되길 바란다.

기지도 못하는데 날려고 기교를 부리는 것은 금물이다
2015
자작나무, MDF, 레이저커팅
788x1090mm
《한글 디자이너 최정호展》 출품작
좌절과 교만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은 일상의실천 뿐만 아니라 많은 작업자에게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모습이다. 특히 자신이 만들어 내는 결과물에 자신의 모습을 투영시키는 작업자에게 그 감정의 진폭은 더 넓고 강하게 일어난다. “기지도 못하는데 날려고 기교를 부리는 것은 금물이다.” 한평생 한글 디자인에 매진해온 디자이너가 남긴 이 말은, 이제 막 디자인 작업실을 정착시켜 갔던 2015년의 우리에게 그래서 더 무겁게 다가왔다. 페이스북의 공감 수가 올라갈수록 좌절보다 교만의 감정에 가까워졌던 우리에게, 한글 디자인의 선구자 최정호의 문장은 기교를 부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겨운 일인지를 다시 깨닫게 했다.

NIS.XXX
2016
웹사이트
자료제공: 시사인
프로그래밍 도움: 최인
<NIS.XXX>는 지난 2012년 18대 대선에 조직적으로 개입하여 여론을 조작한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을 다루고 있는 웹사이트이다.
국정원은 지난 2012년 18대 대선 당시 트위터 리트윗, 오늘의유머 게시글 추천 등 온라인 여론을 조작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으로 대선에 개입했고, 이 사건을 엄중히 조사했어야 할 경찰은 ‘허위 중간 수사 결과 발표’로 대통령 선거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국정원의 대선개입 때문에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선되었다고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 약5년 전 실체를 드러낸, 지금도 인터넷 어느 공간에서 진행되고 있을 국가기관의 여론조작 행위는 선거의 결과와 상관없이 중대한 범죄이자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일이다.
여론을 통해 공개된 국정원 직원들이 작성한 수많은 게시물은 누가 봐도 국정원이 대선에 개입했다고 판단할 수 있는 내용들이 대부분이지만 대한민국 대법원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여전히 판단을 보류하고 있다.
<NIS.XXX>는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이 단지 과거의 사건이 아닌, 여전히 진행 중인 미해결 사건이라는 것에 주목하며, 사건의 실체가 명백히 밝혀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된 프로젝트이다. 국정원이 ‘대북 심리전’이라 주장하며 작성했던 수많은 글과 사건의 흐름을 정리한 아카이브 사이트이자, 자신들의 실체를 애써 숨기며 공작을 펼쳤던 국정원 직원들의 노고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웹사이트이기도 하다.
일상의실천은 약 6개월간 “시사인”과의 협업을 통해 온라인에 여전히 남아 있는 국정원 직원들의 흔적을 여러 각도로 분석, 취합했고, PC 통신 화면의 시각 모티브를 차용해 작업을 진행했다. 메뉴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마우스 클릭이 아닌 키보드의 자판을 눌러야 하고 불필요한 로딩 페이지와 불쾌한 소리를 들어야 한다. 마우스 커서가 아예 보이지 않는 페이지도 있다. 이런 불편하고 불친절한 웹사이트를 통해서 접속자가 이 사건의 당사자가 되어볼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했다.
http://nis.xxx

나는 왜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2016
파이프 설치
1500x1500x3600mm
《세계문자심포지아 2016 — 행랑》 출품작
시공: 최용범
설치 도움: 이경진, 홍재민
김수영은 1921년 11월 서울에서 태어나, 1968년 6월 작고했다. 그는 일제강점기 치하에서 시인으로 등단했으며, 한국전쟁 당시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에 징집되었으나 얼마 후 탈출했다. 그러나 다시 남한 경찰에 체포되어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수감되어 3년 만에 반공포로로 석방됐다.
김수영은 일체의 전형적 언어를 부정직한 것으로 여겼다. 그는 자신의 언어가 관습의 언어가 아닌 자기 자신의 언어이자, 기존의 해석을 뒤집는 새로운 의미를 담는 언어 이고 싶어 했다. 김수영의 시는 한자, 영어, 일본어가 동시에 등장하고, 문어와 구어가 구별 없이 사용되며, 관념어와 구체어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다. 그의 삶은 그의 시에 고스란히 반영되었고, 모더니즘과 리얼리즘, 남과 북, 좌와 우, 그리고 체제 비판과 자기혐오의 어느 지점을 표현하기 위해 그는 ‘경계의 언어’를 구사했다.
그의 시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1965)의 첫 구절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는 소시민의 나약함과 어두운 시대를 살아가는 지식인으로서의 분노를 함축적으로 드러낸다. 그의 분노는 부조리한 사회로 직접 전달되지 못하고, 설렁탕집의 주인과 야경꾼, 그리고 이발쟁이를 향한다. 시에서 그의 언어는 외적 분노와 내적 자조를 동시에 실어 나르는 경계의 언어로 작동하고 있다.
작업의 소재로 사용된 배수관은 식수와 오물이 동시에 관통하는 이중성을 상징하는 도구이자, 무채색 배수관의 물질성은 그것이 잘리고 이어 붙여져 만들어지는 문장의 형태를 통해 김수영 언어의 경계성을 보다 선명히 드러낸다.

텍스트-이미지 변환 장치
2014
타자기, 솔레노이드, 잉크 분사 장치
가변크기
《프린팅 스튜디오 쇼》 출품작
<텍스트-이미지 변환 장치>는 작성자의 의도대로 기입된 텍스트를 무작위의 이미지로 변환해 주는 설치 작업이다. 타자기로 작성된 텍스트는 자음과 모음에 부여된 스물여덟 가지 색상으로 변환되어 종이 위에 분사된다. 텍스트가 생각을 표현하고 의사를 전달하는 도구라고 할 때, 이 장치는 텍스트를 작성하는 사람의 생각을 이미지로 번역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나 이미지로 변환된 텍스트는 본래의 기능을 잃어버리고 흔적으로만 남아 해석이 불가능한 모호함을 가중시킨다. 타자기의 작동원리에 따라 느린 속도로 작성되는 글자와 글자 사이의 간격 사이에서, 관람자는 자신이 써 내려간 텍스트가 지닌 의미와 무작위로 변환된 이미지 사이의 관계를 상상하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난센 여권 프로젝트: 아직 얼마 동안은 빛이 우리 가운데 있을 것이다
2014
복합매체 설치
가변크기
테이크아웃드로잉 레지던시 프로그램 결과물
‘난센 여권’은 탐험가이자 동물학, 해양학자인 프리드쇼프 난센의 이름을 딴 국제 신분증이다. 그의 오랜 난민 구제 활동을 기점으로 1922년 국제연맹은 난민을 위한 신분증을 도입했고, 1942년에는 52개국 정부가 ‘난센 여권’을 승인했다. ‘난센 여권’은 약 45만 장이 발행되었고, 국적 없이 떠돌던 수십만 명의 난민들이 자신이 원하는 국가로의 이주를 지원받을 수 있었다.
‘난센 여권’은 난민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했다. 한국 사회에서 난민을 바라보는 시각은 자신이 처한 환경에 따라 다르다. 어떤 이에게 난민은 함께 살아가야 할 이웃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이들에게는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정부의 복지 예산을 빼앗아 가는 불청객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아직 얼마 동안은 빛이 우리 가운데 있을 것이다.” 이 모호한 의미를 지닌 문장 속에서 난민은 우리 곁에 잠시 머무는 연약한 빛이며, 서로에게 등을 돌리고 살아가는 현실의 가운데에 존재하는 우리와는 조금 다른 존재로 인식됐다. 비록 그들의 존재가 우리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 못하더라도, 그 연약한 빛은 우리 일상 속에 숨어있는, 보이지 않는 서로에 대한 깊은 편견을 미약하게나마 드러내는 역할을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일상의실천은 서울 각지에 위치한 난민을 위한 공간을 방문하고 ‘아직 얼마 동안은 빛이 우리 가운데 있을 것이다’를 구성하는 여섯 개의 단어를 다양한 표현 방식으로 재구성했다. 때로는 직접적인, 때로는 추상적인 표현의 방식을 통해 재조합된 문장 속에서 우리 곁에 나지막이 존재하는 그들의 빛을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랐다.
창원조각비엔날레
보이지 않는 가족
X1990 한국미술
로우테크놀로지
콜라보라시옹
서울국제핸드메이드페어 2017
일러스트레이션페어
레코드폐허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테이크아웃드로잉
어제의 행성
서주연 개인전
무릎을 뚫고 턱으로 빠지는 노래
북한프로젝트
경기엇더하니잇고
변방연극제
그의 부동산 목록
왜, 산양
고래밤
워커스
위기의 삼성과 한국 사회의 선택
반성된 미래
민주 정부 10년, 무엇을 남겼나
현대조선 잔혹사
GDP의 정치학: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절대숫자
유월의 아버지
불안들
우리 균도
왜 우리사회에는 이견이 필요한가
선택이라는 이데올로기
젠더와 발전의 정치경제
그의 슬픔과 기쁨
사람들은 어떻게 광장에 모이는 것일까
기업가의 방문
드로잉 괴물 정령
한남 포럼
아이들의 방
전사의 시대
런던에서 디자이너로 산다는 것은 어떻습니까
작업으로 말하는 사람들
오뉴월
워커스
416 기억저장소
무중력지대
2014 생물다양성 세계지방정부 정상회의
손잡고
서울시50플러스재단
에이유디
융합예술센터
서울혁신파크
환경정의
한국대중음악상시상식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워커스
오뉴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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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생물다양성 세계지방정부 정상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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