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Everyone was sick, but nobody was hurt
2015“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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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복, 「그날」,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문학과 지성사, 2008, 63쪽
(김행숙, 「질문들」, 『눈먼 자들의 국가』, 문학동네, 2014, 25쪽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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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 디자인: 권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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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무능함과 무책임함을 원망하는 사람, 혹은 그것이 단순한 사고였을 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 그들 모두는 한 사회의 구성원이지만 그들이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은 결코 같지 않습니다. 광장과 거리에서, 그리고 70m 높이의 굴뚝 위에서 물대포와 무관심에 맞서는 사람들과, 길 맞은편 카페에 앉아 무심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사람들 사이의 거리는 너무 멀어 아득하기만 합니다. 모두가 이 사회의 무엇인가 잘못되었다고 푸념하지만, 그 병든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 중 아픔을 느끼는 이는 여전히 소수입니다.
1인 시위는 한 개인이 사회를 상대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가장 직접적인 수단입니다. 반면 포스터를 들고 사진을 찍는 행위는 그래픽디자이너가 선호하는 작업을 보여주는 방식입니다. 1인 시위와 디자이너의 포트폴리오를 위한 사진 촬영은 같은 표현 방식을 차용하고 있지만, 그 행위의 목적 사이의 거리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광장의 차가운 시멘트 바닥과 안락한 카페 사이의 온도만큼이나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2014년 성탄절, 서울 도심의 거리는 분주하고 활기찼습니다. 8개월 전의 참사는 -언제나 그렇듯- 우리 기억 속에서 이미 잊혀져 버린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아픔을 느끼며 살아간다는 것은, 모두가 병들어 버린 이 사회를 살아내는 최소한의 양식일지도 모릅니다. 그 아픔을 잊지 않는 사람이 많아질 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를 병들게 했던 원인의 형체를 온전히 마주할 수 있을 것입니다.
2014. 12. 25. 명동
<눈먼 자들의 국가> 참여 작품
클라이언트. Self-initiated Project
Client. Self-initiated Project